2023년 신조어로 보는 한국어의 자화상

다음은 이른바 2023년 한국의 MZ(엠지) 세대[1]라면 안다는 최신 한국어이다.

분조카/중꺾마/~그 잡채/폼 미쳤다./갓생/

꾸웨엑?/SBN/KIJUL/내또출/억텐/맑눈광/슬세권

각각의 의미는 검색을 통해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은 저 단어들의 의미를 알기 위해 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나는 묻고 싶다. 2023년 한글은, 한국어의 자화상은 무엇이며, 그 한국어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한국어와의 간극은 얼마나 먼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국어기본법에 제20조에 따르면 한글날은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한글날은 즉 독창적 문자로서의 한글을 기념하고 증진하기 위한 날이며, 여기서 ‘한글’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인들 간 사용하는 특수한 민족 언어로서의 한글이다. 이는 훈민정음 서문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바와 같이,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과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를 가장 편하게 옮길 수 있는 수단으로서 한글인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한국인들 사이에 쓰는 표현이라도 통용되는 외국어나 외래어에 대비한 토종 우리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MZ 세대의 신조어를 다시 들여다보자. ‘SBN’은 ‘선배님’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영어로 표기해 앞 글자만 따서 모은 것이고, ‘갓생’은 영어 단어 ‘God’ 과 ‘인생’의 생을 따서 조합한 것이며, ‘KIJUL’ 또한 ‘기절’이라는 한국어 단어의 로마자 표기이다. 이렇듯 많은 신조어들은 한국 MZ 세대들이 문자로서 한글만큼 외국어인 영어 또한 편하게 받아들이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조어들도 순수 한글 표현은 줄어들고 외래어나 외국어를 혼합한 표현이 주를 이루며, 기존의 표현들도 간단하게 축약해 표현하거나 단어만 보고 본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려운 고맥락 단어가 많아지고 있다.

MZ 세대 신조어에서 나타나는 특성들을 살펴보면, 한국 청년 사회 전반에 녹아든 외국어와 외국 문물을 확인하게 해준다. 더 많은 한국의 청년들이 해외 생활을 동경하고, 경험하는 만큼, 해외의 문물이 한국에 소개되고 익숙해지고, 언어적 표현 또한 한데 뒤섞인다.

나는 이게 꼭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행에 민감한 한국 청년들이 세계와 교류하는 만큼 한국의 문화도 그만큼 더 멀리 많이 퍼져나가고 있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는 한글 표현 그대로를 차용해 사용하는 예 또한 늘어나고 있다.

2021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aegyo(애교)/ chimaek(치맥)/ oppa(오빠)/ hallyu(한류)/ K-drama(K 드라마)/ Mukbang(먹방) 등을 포함해 한국에서 유래된 영어 표제어 26개가 등재되었고, 2023년에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Celine Song이 만든 영화 ‘Past Lives’에는 한국어 ‘인연’(In-Yun)이라는 단어를 영화 전반에 그대로 채용해 이야기를 채워간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들 가운데 전통문화 관련 용어들을 제외하고는 오랜 기간 널리 쓰이는 한글 표현보다 한국에서도 최근 등장한 신조어들이 많다. 예를 들어, ‘hallyu’(한류)란 단어도 20세기 말에 등장한 신조어이고 ‘Mukbang(먹방)’ 이나 ‘chimaek(치맥)’ 등은 21세기가 돼서야 등장한 단어들이다.

많은 외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어는 한국 사람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다 보면, 원래 한글이 갖고 있는, 한민족끼리 사용하는 글로서의 특성은 상당 부분 잃어버릴 수 있다. 또한 외래어 외국어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 우리말도 많이 줄어갈 것이다.

이런 변화가 나쁜가 좋은가 판단은 각자 하되, 한국어를 둘러싼 세상은 그렇게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많은 신조어들이 외래어/외국어 차용과 별개로 소수의 세대를 중심으로만 배타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인데, 최근에는 특정 표현을 모르거나 어떤 세대를 대표하는 표현을 쓰는 것이 차별의 수단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때가 있다.

언어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그 변화는 누군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글날을 맞아 한국어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살펴보고, 미래 한국어의 위상만큼이나 한국어와 이를 기념하는 한글날의 변화 방향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이 글을 쓴다.

자유기고문,

‘2023년 신조어로 보는 한국어의 자화상’

멜버른에서 차윤선


[1] MZ세대는 1981-1996 사이에 태어난 밀레이얼 세대(M세대)와 1997-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를 MZ로 묶어 부르는 대한민국의 신조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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