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칼럼 – 이장로의 이야기 房]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써 놓고 보니

1.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책도 기계의 힘을 빌려 읽고 노래 가사도 화면이 흘려주는 대로 따라 부른다. 이메일과 카톡 등 SNS를 통해 소통을 마무리하니 관계의 편리가 극치를 이룬다. 손 글씨가 불필요하고 펜을 들어 편지 쓰는 사람은 미련하거나 뒤처졌거나 이상한 감성을 가진 퀘퀘한 사람 취급을 받는 세태다. 편지 배달로 기다림과 설렘 사이를 중매하던 우체부 아저씨들은 인쇄된 문서나 택배를 무겁게 나르고 우체국은 와장창 떨어진 우표 판매 수입을 금융거래 업무나 상품 판매로 만회하려 기를 쓴다. 어제의 미담과 향수는 온데간데없고 하루가 다르게 새것이 밀어닥치니 아날로그에 익숙한 구세대는 바보가 되어 간다. AI가 손쉽게 알려주고 지어주는 정보와 번역 편지에 좋은 세상이 왔다고 환호하는 사이 인간의 지성은 퇴화하고 개인은 무력해지는 아이러니를 잊고 있다. 수백 곡의 가사를 외워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노래방 기계의 도움 없이는 한 줄 가사도 읊조리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현재의 세상을 작동시켜 주는 컴퓨터와 AI 기능이 멈춘다면 인간은 할 줄 알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기술문명의 발전이 부르는 폐해(인간의 자생력)의 데자뷰를 상상할 수 있겠다. 며칠 전 어느 과학자가 던진 경고가 섬뜩하다. <우리는 지금 AI를 만드는 게 (Create) 아니고 키우는 (Raise) 중이다>. 현대인이 열광하는 로봇이 장차 사람을 능가하는 지성에 감성까지 갖춘 수퍼휴먼이 된다는 말이다. 로봇의 지배하에 생사를 걸어야 하는 흉측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지적이 허언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십 수년 전에 나왔던 윌 스미스가 주연한 로봇 영화의 실사판을 볼지도 모르겠다. 10년 안에 인류의 절멸을 판단하는 과학자의 코멘트는 이제 겨우 서너 살배기인 손주들의 내일을 크게 근심케 했다. 5년 전만 해도 OECD 평균 지능을 가졌던 한국인의 IQ가 90 정도의 하위(下位)로 추락했다고 한다. 지능은 판단력과 상황 타계를 위한 기본 능력이고 원천이다. AI 선도국이고 반도체 왕국이며 인터넷 설치와 이용에서 세계 1위인 한국의 평균 지능이 반탄(反彈)하는 기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나친 디지털 의존의 사이드 효과 아닐까.

2.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자식에게 희생하는 삶을 미덕으로 운명으로 믿고 버둥거리던 세대는 세상이 불편하고 억울하다. 잘못한 것도 없이 혼나고 구박당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학생 꼴이다. 피땀 흘려 나라 세우고 목숨 걸고 국가와 가정과 식솔을 지킨 세대는 하소연할 곳도 없고 입을 열면 꼰데로 무시당하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나라에 복지를 구걸하고 조밀하게 연결되고 복잡 난해하게 작동되는 행정업무와 사회 간접시설 앞에서 무기력을 통감한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참아가며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들은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의 사소한 부탁에도 도움 대신 언성부터 높이고 타박하기 일쑤다. 제 새끼한테 100불은 아낌없이 건네지만 애비가 부탁하는 100불은 반드시 용처를 묻는 세태가 아무렇지도 않은 상식이 된 비상식의 난장판이다. 사는 게 바쁘려니 눈감고 섭섭함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부모의 가슴은 분명 숯 검댕이고 걸음걸이는 비틀비틀하다. 긴 시간 동안 어르신들과 친교하며 지켜본 열에 여덟이 겪는 현실이다. 운이 좋았는지 나름 애들에게 효도하라고 가스라이팅을 했는지는 모르나 아들들 내외가 아직은 나를 깔보거나 없수이 여기지 않고 반갑게 대해주고 잘 챙겨줘서 대단한 훈장이라도 받은 느낌이다. 하옇튼 지금은 노인들의 암흑기이고 멀지 않은 미래에는 추측이 불가한 상전벽해의 카오스가 사람이 지켜 온 소중한 가치와 상식을 비참하게 지워버릴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살아생전엔 보기 싫으니 아픈 지구의 병세가 좀 천천히 기울었으면 좋겠다.

3.
푸념 같은 소리를 쏟아 냈다. 걱정보다는 이래저래 세상이 내 맘과 손에 쏙 잡히지 않고 어수선하니 나오는 객정(客情)이다. 봄이 오는 시드니엔 꽃이 만발했다. 분홍색 꽃이 줄지어 선 칼링포드의 발라카 드라이브를 지나다가 봄노래가 떠올랐다. < 紅杏枝頭 春意閙> 살구나무 가지에 붉은 꽃이 봄을 다툰다는 뜻이다. 나는 한마디로 구닥다리다. 서양문화권인 호주에서 불혹의 연조를 살아 냈건만 여전히 나는 오래된 한국의 판소리나 창(唱)을 줄기고 고문(古文)을 들춰가며 배우기를 좋아하는데 스스로는 매우 행복하다. 제법 총기가 있다는 소릴 듣는 늙은이지만 나는 일부러 시대에 많이 뒤처져 걷는다. 뜨신 마음을 정성껏 전하는 손편지를 고집하고 하루 10시간씩 컴퓨터 앞에서 밥벌이를 하지만 챗지피티나 제미나이 같은 디지털 첨단묘기(妙器)는 일부러 쓰지 않는다. 미련하고 답답하지만 대로(大路)를 피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열심히 찾는다. 늙어 느려 터지고 두뇌 기능이 병든 몸으로 철마다 핸드폰을 바꾸고 빠른 세상을 두리번거린다고 쌈박하거나 열린 노인 소리 듣긴 어렵다. 그럴 바에는 내가 알고 좋아하는 길을 행복하게 걷자는 심산이다. 인생 뭐 있나. 간결하지만 소신 있고 개성 있는 내 길을 우직하게 사는 데 가치를 둔다.

4.
제목은 거창하게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쓰고 나서>라고 시작하고 엄한 소리만 늘어놨다. 볼펜을 꾹꾹 눌러 손으로 몽땅 써 보니 A4 용지로 30장 정도 된다. 좋은 세상을 위해 마땅한 인권을 고려하고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위한 법을 엄격한 용어로 채워 놓은 것이 헌법(憲法)이다. 민주공화국의 원칙과 기준이 찰지게 정렬된 문장이다. 그런데 찬찬히 뜻과 의도를 살피며 써 놓고 보니 공허했다. 컴퓨터로 주루룩 인쇄하면 1,2분이면 충분할 분량을 며칠 만에 마친 탓에 어깨죽지가 아파 씁쓸했고 내용도 현실과 많이 엇나가 있어 허허로웠다. 뉴스 에이전트에서 구입한 잉크 펜 두 자루가 소진되는 동안 정신이 들고 마음은 부자가 됐다. 어차피 컴맹 소리 듣는 노인 신세라면 뭐든지 써 보길 권면한다. 집중력과 기억력 회복에 담방약이 되니 치매 예방에 특효다. 성경도 좋고 고서도 괜찮고 흘러간 노래 가사도 좋다. 하찮아 보여도 글이나 글씨 쓰기는 젊은이보다 한결 윗질이고 지구력을 키우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성취감도 있으니 하릴 없이 노느니 보너스다.

5.
1987년에 만들고 88년 2월에 공포된 헌법을 개정하느니 마느니 하며 저마다의 속셈이 흔드는 기준과 원칙이 불안해 보이는 대한민국의 정가(政街) 뉴스가 불편하다. 찬찬히 내용을 살피고 뜻을 이해하며 써 본 조문조문 사이에 애매함이 묻어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코와 입에 거는 유권적 결론이 금권(金權)에 좌지우지될 소지가 내 눈에도 쉽게 보여 새삼 탄식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 한 말처럼 언제나 상식과 객관성이 담보되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합의가 잣대가 되길 소망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지켜주는 국가공동체를 지탱하는 헌법체계가 틀림없이 공명정대하게 적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써 봤다.

시드니저널 SYDNE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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